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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히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게 되었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초반에 읽을 때의 생각과 점점 읽으며 변화한 생각, 마지막까지 읽은 뒤의 감상이 정말 달랐다.

 

내용은 과학서적이라기엔 인문서였고 인문이라기엔 과학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초반은 사실 크게 흥미를 붙이고 읽지 못했다. 나에게 과학, 그것도 분류학은 내가 관심을 가지기엔 너무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이 좋았던걸 생각하면서 억지로 라도 읽다 보니 중간부터는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 채 책에 빠져 읽게 되었다. 심지어 중간에 책을 읽다 말고 이 책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분류를 확인하기 위해 책을 한 번 더 검색해보기도 했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혼돈을 마주한 저자는 한 인물에게서 자기 인생의 해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 희망으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을 쓸 결심을 하게 된다. 그녀가 찾은 해답의 열쇠를 쥔 인물은 데이비드 조던. 과학자인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세상에 알려진 물고기의 5분의 1을 발견해냈다는 것에 있다. 그는 평생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물고기를 찾아내서,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연구는 알 수 없는 인생의 시련에 의해서 와해될 뻔 하지만, 데이비드는 자기 운명을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믿음으로 수많은 시련들을 꿋꿋하게 헤쳐나가며 자신의 연구를 지속한다. 그리고 그는 끝내 세상에 대단한 흔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의 첫 모습은 데이비드 조던이라는 과학자에 대한 찬미가 섞인 자서전처럼 보였다.

 

하지만 책은 중반부에 이르러 첫 인상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데이비드 조던의 어두운 면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자기 일에 꿋꿋이 매진했던 부지런하고 근면 성실한 과학자로만 보였던 데이비드 조던이 사실 스탠퍼드의 창립자였던 제인 스탠퍼드를 살인하는데 일조했다는 정황을 보이고, 우생학을 강력하게 주장한 학자로 살면서 부적합자로 찍힌 무고한 사람들의 운명을 망가뜨리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저자는 책에서 드러낸다.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데이비드 조던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면서 책은 삶의 의미와 태도에 대해서 성찰하는 철학서의 성격을 보이기 시작한다. 저자는 믿고 의지하고자 했던 데이비드라는 인물의 추악한 면을 발견하고, 어떤 인물에게 의존해서 인생의 해답을 찾아가는 대신에 직접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삶을 성찰하기로 결심한다.

 

데이비드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던 이유가 한 존재의 복잡성을 보지 못하고, 계층적 관점으로 모든 존재를 바라보는 태도를 버리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저자는 진단하며 자신은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새로 정립하게 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복잡다단하다. 모든 존재는 복잡하다. 그래서 어느 한 범주 안에 뚜렷하게 분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물 속 생물들은 어류라는 하나의 분류 체계 안에 꾸겨 넣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들이다. 같은 물고기는 없다. 모든 물고기는 저마다 다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모든 것은 변하고 누구든 잘못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이런 새로운 것들을 인정하는 것 또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