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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타일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반짝이는 이미지와 들뜬 분위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동안 보았던 크리스마스 영화나 소설들도 뭔가 마법 같은 일이나 특별한 행운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도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 책 속 인물들에게는 그런 극적인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에도 매일의 일상이 이어질 뿐이다. 오히려 그들의 모습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이 현실에 더 가까워서 인지 과장된 듯 보이는 해피엔딩보다 훨씬 위로와 공감을 주었다.

 

우선 '크리스마스 타일' 이 책은 다음과 같은 7편의 단편이 실린 연작소설이다.

  • 은하의 밤
  • 데이, 이브닝, 나이트
  • 월계동 옥주
  • 하바나 눈사람 클럽
  • 첫눈으로
  •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 크리스마스에는

연작소설의 특징처럼 각 단편의 주인공의 주변 인물로 등장한 조연들이 다른 단편에서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마치 우리 인생을 한쪽의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명징한 사실을 다시 한번 각성시켜준다. 특히나 모든 이야기가 크리스마스라는 북반부의 겨울을 보내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맞이하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즌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뭔가 아쉽기도 서운하기도 정리도 해야 하기도 떠나보내야 하기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떠오르게도 한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크리스마스는 뭔가 축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조금은 설레기도 하지만 도저히 그 축제의 한자락에도 마음을 기입할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도리어 우울과 짜증을 자아내기도 하는 딜레마의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작업을 해나가면서 성당에 나가 주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마 이 도시에서 가장 규모가 작을 동네 성당에는 내가 그간 한번도 보지 못한 수의 노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분들의 나직한 기도와 읊조림과 느린 발걸음 속에서 계절을 보내는 동안 때로 나는 너무 젊게 느껴졌고 때로 마치 백지처럼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렇게 세상에 대해 채워나가야 할 아주 많은 수의 조각들을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라는 작가의 말을 통해 마지막 두 단편을 묶은 소제목인 '하늘 높은 데서는'이라는 구절은 대영광송의 첫 기도 말에서 착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겨울에 필요한 마음을 되짚어보는 작가의 인사말처럼 눈이 내리고 손발이 꽁꽁 얼어붙고 어깨가 움추러드는 찬바람이 몰아치는 계절의 변화는 언젠가 맞이하게 될 생과 사의 종착점을 연상하게 만든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다가올 텐데'라는 찰나의 고민은 분주한 일상 덕분에 연기처럼 흩어지지만, 어디선가 들려온 타인의 부고와 덕분에 피어오르는 더는 마주할 수 없는 그리운 사람과의 추억으로 인해 그동안 악착같이 손에 쥐려 했던 모든 것들의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그 '하늘 높은 곳에는'는 지금은 온갖 자잘한 이유를 대며 해소하지 못한 아주 작은 갈등과 잘못과 실수까지도 상세히 소명하며 화해할 수 있도록 허락해줄 것이다.

 

'크리스마스 타일'은 평범하다 못해 조금은 엉망으로 보이기도 하는 내 삶도 괜찮을 수 있음을 삶은 원래 그런 것임을 보여 주는 소설이었다.